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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5.27 | 조회수 : 426

제목 : 《5.24》[오피니언]中, 북한에 核 포기 더 압박해야 ─ 문화일보 기고 글쓴이 : paxsi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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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렬/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장·중국학

북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23일 중국 공산당 서열 5위인 류윈산 정치국 상무위원을 만나 “중국의 건의를 받아들여 관련국과의 대화에 나서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최룡해의 이 말에 류윈산 상무위원은 “우호적 중·조 관계는 중국의 일관된 입장이며, 이른 시일 안에 6자회담을 재개해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노력하기를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6월 7일로 예정된 시진핑·오바마 회담과 추진중인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訪中)을 감안한 북한의 선제적 행동이다. 얼핏 보면 북한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선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착시 현상이다.

북한은 2월의 3차 핵실험에 이어 3월에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이른바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채택했다. 핵(核) 보유를 기정 사실화했고 당 노선으로 채택했으니, 이젠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해 경제 건설에 매진하겠다는 계산된 행동이다. 중국 입장을 세워주는 최소한의 제스처를 보이지 않을 경우, 연이은 미·중,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분위기가 연출될 수도 있음을 아는 북한이 먼저 중국에 손을 내민 것이다. 또, 북한이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인민군 총정치국장인 최룡해를 파견한 것은 당과 군 관계가 여전히 북·중 관계를 이어주는 초석이라는 상징성을 띤다. 우려되는 것은 북한의 약삭빠른 행동이 아니라 또 다시 재연된 중국의 어정쩡한 대응이다.

북한이 거듭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핵 전력 보유를 기정 사실화했지만 중국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와 안정을 위한 6자회담 재개라는 진부한 대안 제시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핵실험에 이어 줄곧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전례 없이 개성공단까지 중단시킨 북한이 김정은의 특사 파견으로 ‘우호적 중·조 관계’를 복구하고, 잘하면 춘궁기에 중국의 식량 지원까지도 선물로 챙길 수 있는 형국이 돼버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특사의 깜짝 방북은 중국의 조바심을 자극한 조미료였던 셈이다. 그동안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중국이 연출했던 중국 여론과 학계의 북한 비판 운동은 별 효과 없이 막을 내릴 판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 석은 미·중, 한·중 정상회담에 앞서 중국의 명확한 입장을 북한에 전해야 한다. 이제 중국은 시한도 구체적 청사진도 없이 애매한 ‘한반도 비핵화와 대화를 통한 해결’이라는 구두선(口頭禪)을 버릴 때가 됐다. 당장 문제가 되는 북한의 핵 개발을 중단시키고 북한 주민의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정책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행여 김정은 특사의 중국 치켜세우기에 미혹된 나머지 시진핑 주석이 한·미 정상을 만나서도 또 다시 관련 당사자의 냉정과 대화,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의 공허한 주문만 늘어놓지 않을까 걱정된다.

지난 10여 년 동안 북한이 핵 개발을 위한 시간벌기와 입장 선전의 장으로 활용하고, 당사자라기엔 거리가 있는 일본과 러시아도 숟가락을 얹었던 6자회담의 틀도 이제는 근본적으로 그 효용성을 재검토해 봐야 한다. 중국이 상상 속의 중재 역할에 도취돼 6자회담의 공염불을 되풀이한다면 북한의 잘못된 선택을 고치기는 어렵다. 다음 달부터 전개될 미·중, 한·중 정상회담이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대안 제시 없이 현란한 수사(修辭)의 난무 속에 미·중의 전략적 세(勢) 과시나 한국의 막연한 기대감 표시로 마무리된다면 중국이 그토록 강조해 온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는 더욱 멀어질 것이다. 북한 핵 국면으로부터의 출구전략이 현실 도피와 망각의 통로가 돼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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