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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7.01 | 조회수 : 527

제목 : 《6.28》[오피니언]한·중 관계와 ‘외화내빈’ 경각심─ 문화일보 기고 글쓴이 : paxsi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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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방중(訪中) 첫날인 2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갖고 ‘한·중 미래 비전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도착 당일 광속(光速)으로 나온 공동성명에는 박 대통령이 30일까지의 방중 기간에 중국에서 받을 환대와 28일로 예정된 리커창 국무원 총리, 장더장 전인대 상무위원장과의 면담 사실이 담길 정도로 서둘러 발표한 흔적이 보인다.

물론 국가 간의 정상회담 의제와 성과는 회담 이전에 큰 틀이 조율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다. 하지만 양국 정상 간의 진지한 논의 과정에서 표현을 조탁(彫琢)하고, 예상을 넘는 내용을 담아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좋게 보면 한국과 중국의 새 리더십 간에 적어도 소통의 문제나 심각한 갈등이 없다는 것이나, 다른 한편 주요 현안에 대한 양국의 입장 차이가 너무나 뚜렷해서 양국 정상의 직접 대면을 통해서는 더 이상 나올 게 없었다는 솔직한 고백이기도 하다.

이번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지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미흡했던 양국 간 신뢰의 회복과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적 방안 모색에 방점을 뒀다. 공동성명은 2008년에 설정된 후 유명무실했던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복원을 알리는 다방면의 발전 방향을 망라했다. 그러나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과 평화와 안정 강조, 6자회담의 틀이라는 기존의 도식에서 더 나가지 못하는 한계성을 보였다.

북한에 대한 정책은 중국이 자국의 이익 관점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 한국과 공동 보조를 맞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한국에서 확산됐던 중국의 대북(對北) 정책 전환에 대한 희망적인 예단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또, 대규모 경제사절단의 수행에도 불구하고 경제협력 방안은 원론적 차원에 머물러서 뭔가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다.

어쨌든 한·중·일 3국의 현대사에서 처음 등장한 여성 국가수반이며, 한국의 경제 발전 초기를 이끌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자 중국어를 구사하고 중국을 중요시하는 박 대통령에 대한 중국인의 반응은 뜨겁다. 역대 한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현지 매체의 관심이 집중됐다.

또 중국의 자존심이자 서부대개발 전략 기지며, 더욱이 지난해부터 삼성전자가 7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는 3000년 고도(古都) 시안을 방문하고, 명문 칭화대학에서의 강연계획을 잡은 것도 그 상징성에 있어서 호평을 받았다. 심지어 일부 매체는 박 대통령에게 중국에 대해 긍정적 역할을 했던 외국인에 대해 붙이곤 하는 ‘오랜 친구(老朋友·노붕우)’라는 호감어린 호칭을 사용했다. 요즘 웬만한 중국 서점은 좋은 위치에 반드시 한두 권의 박 대통령 소개서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 개인에 대한 중국인의 관심이 한·중의 전략적 괴리라는 현실을 덮을 수는 없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과의 공조 체제 구축과 전환기를 맞은 한·중 양국 경제의 실질적 협력 추진, 그리고 한미동맹과 한·중 관계의 균형적 발전은 박근혜정부가 넘어야 할 산이다. 북한의 핵 개발 속도는 예상보다 빨랐고,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 둔화는 심각하다. 미국과 중국은 자국의 이익 차원에서 한반도 문제를 재단(裁斷)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맛보는 환대의 달콤함으로 인해 중국의 완강한 한반도 현상 유지 전략과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보호주의적 산업정책, 그리고 중국 주도의 동아시아 질서 재편 노력에 대한 경각심을 늦춰서는 곤란하다.

첫술에 배부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너무 쉽게 태어난 한·중 공동성명의 번지르르한 겉치장과 원론에 머무른 내용을 우려한다.


오승렬/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장·중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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