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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1.16 | 조회수 : 57

제목 : <사설> 계몽의 나라 프랑스에 ‘큰 실망’‎ (2024.1.16)‎ 글쓴이 : 중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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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12월 19일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회에서 이민법 개정안을 가결한 후 큰 분노와 실망의 목소리를 마주하고 있다.

여러 단체에서 법안을 공포해서는 안 된다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호소하였다. 프랑스 총리와 장관은 사표를 내며 개정안에 반발하였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주 주말 공식적으로 채택된 법안을 승인하였다.

의회의 법안 가결 직후 정치인 및 활동가들은 극우 이데올로기가 나라에 깊게 뿌리내렸다며 큰 ‎‎실망감을 표했다. 극우 이데올로기가 여러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국 스튜디오를 장악하자 만연한 ‎‎극우 사상이 오늘날 관행과 법률에서도 체감할 수 있는 현실이 된 것이다.

여러 유명 인사들이 이번 사안의 중요성을 축소하려 하지만, 극우정당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이 아니었다면 ‎‎새로운 법안을 채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례 없는 인권 퇴보

이민법 개정안의 일부 조항은 좌파 정당과 인권 단체 입장에서 보았을 때 심각한 퇴보이자 자유와 인권의 침해이다.

법안은 1년에 수용해야 하는 이주민 비율에 대한 쿼터제 도입을 승인한다. 프랑스 땅에 불법 거주하는 것 또한 ‘경범죄’로 간주되어 약 3,750유로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또한 프랑스는 13세 이전에 프랑스로 입국한 거주증이 없는 이주민을 추방할 수 있고 나아가 ‎‎프랑스 국적 자식이 있는 비프랑스인 부모도 추방할 수 있다. 오늘날의 프랑스 제5공화국 ‎‎정치체계 아래 자유와 인권이 실질적으로 퇴보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불법체류 이주민 신분 합법화는 식당, 호텔 등 일손이 크게 부족한 부문에서 전과 없는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점과 유관한 사안이다. 신분 합법화는 갱신가능한 1년 이하의 거주증 발급이 필요하다.

사회적 지원금, 특히 수입이 적은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주택 관련 지원금은 크게 제한되었다. ‎‎개정안에 따르면 지원금 혜택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직업을 갖고 프랑스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해야 한다.

비근로자의 경우 지원금 신청을 위해 5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학생, 정치난민, 일시적 보호상태의 이주민은 예외 대상이다.

더 나아가 국적 획득과 관련된 출생지주의 원칙의 범위를 줄였다. 프랑스 국토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도 부모가 외국인일 경우 더 이상 프랑스 국적을 자동으로 취득할 수 없다.

개정안은 국적 취득을 위해서는 특정 연령(16세에서 18세)의 개인이 국적 취득을 신청하도록 명시한다. 관련당국은 자료 검토 후 신청을 수락하거나 거부한다. 그러나 주어진 국적이 영구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당국은 이중국적자가 범죄를 저지른 경우 국적을 박탈할 수 있다.

가족재결합 사안도 개정안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가족결합도 크게 제한되었다. 소규모로 가족을 ‎‎프랑스로 데려오고자 하는 외국인은 프랑스 국토에서 1년 6개월이 아닌 2년 동안 거주해야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월급, 합류하게 될 가족 구성원 수, 거주지, 프랑스어 소통능력 등 가족 소환을 위해 적절한 사회적, 직업적인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개정안은 유학생이 최초로 거주증을 갱신할 때 출국 시 돌려받을 보증금을 내도록 규정한다. 해당 조항에 대해 명문 대학들이 분노를 표하며 집단성명을 발표하였다. 집단성명에서는 이러한 조치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학술연구 측면에서 유학생이 국가에 기여하는 바를 강조했다.

 

위태로운 ‘자유-평등-우애’

새로운 개정안은 그 어느 때보다도 프랑스 국가의 가치에 큰 의문점을 제기했다. 개정안이 ‎‎실행되면 ‘자유, 평등, 우애’는 힘 없이 무너지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가치가 될 것이다. 프랑스는 이러한 가치를 들고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인권과 시민의 권리를 외치도록 한 계몽주의 철학의 유산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악명 높은 바스티유 감옥을 탈취하고 국민의회를 열었던 상징적인 이 철학은 프랑스에만 ‎‎국한되지도, 모든 인간을 차별하지도 않는다. 프랑스 인권선언 제1조는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나고 살아간다.”라고 명시한다.

프랑스인권연맹(Ligue des droits de l'Hommes, LDH)은 이번 개정안이 최근 수십 년간 가장 ‎‎폭압적이고 퇴보적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기본권에 대한 위험한 침해이자 외국인의 지위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불러온 분노의 목소리는 노동조합과 좌파 정치 단체에서도 나타났다. 전 모로코 출신 ‎‎장관 나자트 발로 벨카셈(Najat Vallaud-Belkacem)과 혼인한 프랑스 사회당 하원 대표 보리스 ‎‎발로(Boris Vallaud)는 새로운 법안이 위험한 조치이자 프랑스에 있어서 치욕이라며 의견을 밝혔다.

이주민과 그 후손은 수십 년간 GDP 성장에 기여하고 문화와 연구, 기술, 체육,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라를 빛내며 프랑스의 발전에 역할을 다해 왔으나 노력이 충분하지 못했던 듯하다.

프랑스는 이주민을 수용하고 통합할 정책을 재검토하며, 지식과 과학이 서로 만나도록 전문가의 ‎‎지도가 이루어지는 진지한 교육학적 방법론이 아니라 법률상 접근법을 취하며 도피하길 ‎‎택했다. 그러나 법적 접근은 앞으로의 상황을 훨씬 복잡하게 할 것이다. 특히나 이민법 개정은 이주민 차별을 정당화시키듯 반 이주민 감정에 불을 지피며 사회에 혼란을 야기해왔다.

 

희생양

오늘날 이주민은 경제, 정치계에 미치는 여파가 극도로 커진 숨 막히는 경제 위기의 희생양일 ‎‎뿐이다. 더불어 조세회피로 인한 프랑스 재정 손실은 연간 800억에서 1,000억 유로에 이른다. 또한 탈세로 인한 손실은 연간 500억 유로로 추정된다.

개정안과 관련된 논란은 더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제노포비아, 특히나 무슬림 혐오가 크게 ‎‎증가하여 지금도 취약한 국가의 통일성을 그 어느 때보다도 큰 분열로써 위협할 것이다.

또한 주변 마을과 도시는 더욱 위축된, 더욱 공격적인 곳으로 변모할 것이다. 국가 안보를 위한 ‎‎해결책도 사회적 평화와 공동의 삶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실질적인 안정은 정의롭고 평등한 ‎‎권리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프랑스라는 이름은 민족과 인종, 성별과 무관하게 사회적 국가, 민주주의, 자유, 그 땅에 선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직결되어 있다. 이는 전 세계 프랑스계 엘리트층이 언제나 자랑스럽게 ‎‎여겨왔던 시민과 국가 간 차별화된 상징이었다.

하지만 몽테스키외와 루소, 장 조레스의 나라는 오늘날 암담한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의 ‎‎이름은 ‘민주주의의 쇠퇴와 국가 정체성의 위축’이다. 안타깝지만 역사상 가장 빛났던 문명의 ‎‎쇠퇴가 시작되고 있다.

 

여러 주요국에서 2024년 새해에 큰 선거를 치른다. 미국과 대만의 선거가 불러올 지정학적 여파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지만, 유럽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변화 대응 등 국제적 문제에 영향력이 상당하다. 특히 우파 세력의 확장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가 주목된다. 2022년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시작된 우파 세력의 정권 장악은 네덜란드, 프랑스, 스웨덴으로 점점 퍼져 나가고 있다.

우파 정당의 지지율 기반에는 강경한 이민 정책이 있다. 접경 지역이 넓은 이상 이주민을 절대적으로 차단하기 어려운 환경임에도 이주민을 우리 공동체의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체계 구축을 위한 장기적 해결책은 인기가 없다. 기후변화 대응 등 기성세대의 의무 또한 비현실적인 일이라며 비판받는다. 오히려 거주, 인플레이션, 범죄 등 당장 직면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극우 정당의 단기적 해결책이 강세를 보인다. 이미 유럽 극우파 정책에는 ‘포퓰리즘’이라는 이름이 따라붙었다.

세계는 수년간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노력해 왔다. ESG 붐이 일며 환경 차원을 넘어 모두가 공존하며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목표로 달려왔다. 하지만 기후변화 대응, 이주민을 통한 노동력 구축에 반대하는 우파의 득세는 과거의 노력을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비단 ESG뿐만이 아니다. 이번 프랑스 개정안은 한 국가가 천년 넘게 지켜온 정신마저 무너지고 있는 국제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외국인 혐오를 키우고 출생지주의에 의혹을 던지며 평등과 관용이라는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근시안적 정책은 프랑스 사회에, 나아가 국제사회에 어떤 혼란을 일으키게 될지 예측조차 할 수 없다.

 

출처:خيبة أمل كبيرة في فرنسا بلد الأنوار”, Al Jazeera, Jan 4, 2024 (제목을 클릭하면 원문으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기사날짜: 2024.1.4 (검색일: 20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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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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