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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3.14 | 조회수 : 1399

제목 : 특별한 것 없다고? 그게 북유럽 디자인 글쓴이 : 스칸디나비아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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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큐레이터 안애경씨와 핀란드에서 온 디자이너 헨리크 엔봄, 일라리 아이리칼라.

[매거진 esc] 
17일부터 열리는 ‘핀란드 디자인전’ 기획자에게 듣는 스칸디나비안 스타일

지난해 9월 휴가로 떠난 핀란드 헬싱키. 그곳에서 핀란드의 국민 건축가인 알바르 알토가 살던 집을 찾았다. 핀란드 지폐에까지 등장했다던,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퇴계 이황이나 세종대왕 정도 되는 위대한 건축가의 집은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2층으로 된 집안 구석구석의 의자와 테이블, 주방 가구들. 그 와중에 드는 생각. ‘알바르 알토가 직접 디자인했고, 쓴 의자라고?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얼마에 팔릴까?’ 일본에서 온 건축학도와 연신 감동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사진을 찍어대던 미국에서 온 노부부 틈바구니에서 떠올린 불온한 의문이었다.

혼자서 부끄러워했지만, 그 생각을 떨쳐버린 것은 아니었다. 북유럽 디자인을 즐기기 전에 ‘얼마짜리인지’에 관심을 쏟는 게 한국에서 온 사람으로서는 당연하게 여겨졌으니까. 자연과 인간, 사회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일상 속에 녹인 ‘핀란드 디자인’이 어느새 일상과 동떨어져 ‘럭셔리 디자인 트렌드’에 영합하는 세태인 게 어쩔 수 없는 국내 현실인 탓이다. 아마도 잡지나 매체에 소개된 고가의 빈티지 가구의 화보 정도만 접했을 뿐 ‘핀란드 디자인’을 제대로 느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테다.

알바르 알토가 디자인한 아르테크의 의자와 식탁.
“어느새 한국에서는
디자인이 사치가 되어버렸죠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해요”

그렇다면 과연 ‘핀란드 디자인’이 무엇일까? 오는 17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 1~3전시실에서 열리는 ‘핀란드 디자인’전의 전시를 바쁘게 준비하고 있는 팀을 지난 11일 만났다. 큐레이터인 <핀란드 디자인 산책>과 <노르딕 디자인>의 지은이 안애경씨와 핀란드에서 직접 전시 준비를 위해 달려온 헨리크 엔봄, 일라리 아이리칼라가 그 주인공이다.

“‘이게 핀란드 디자인이야? 특별한 거 없네’라고 갸웃할 수 있겠죠. 저는 관객들이 그렇게 느끼길 바랍니다.” 안애경 큐레이터는 말한다. “어느새 한국에서는 디자인이 사치가 되어버렸죠. 핀란드 디자인뿐 아니라 디자인은 예술이 아니에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그 자체로 공공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죠.”

카이 프랑크가 디자인한 이탈라의 식기들.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바 역시 군더더기 없다. ‘핀란드 생활방식 속의 디자인’이다. 어디선가 들어봤던 문구인가? 그러나 전시 방식은 그렇지 않다. 11일 찾은 전시실에서는 못 박는 소리, 톱 소리가 요란하다. 나무로 진짜 ‘집’을 짓고 있다. 집 형식을 빌린 전시공간에는 핀란드인의 식탁 차림과 여름집(핀란드인들이 휴가철 떠나는 전원주택)의 변소, 아이들 교실 등이 꾸려진다.

식탁 차림에는 핀란드 디자인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 가운데 한 명인 카이 프랑크가 디자인한 그릇과 컵 등이 놓일 예정이다. 전시 내용을 설명하는 사람도 따로 배치하지 않을 예정이란다. 일상 속의 디자인 제품을 가까이서 보고, 때로는 만질 수 있게 한다는 게 안씨의 생각이다. “깨질 수도 있겠죠. 그런데 핀란드 디자인의 핵심은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것을 건너뛴 채 이해한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나무 팰릿을 재활용해 만든 책상과 의자.
단순하고 기능적인
한국 전통 공예품
핀란드 디자인 정신과 맞닿아

트래시(쓰레기) 디자인도 이번 전시 가운데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핀란드에서 건축과 엔지니어링 등 다방면의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헨리크 엔봄, 일라리 아이리칼라와 힘을 보태고 있는 한국인 동료들은 어느새 뚝딱 나무 팰릿(pallet·대형 화물을 옮길 때 바닥에 놓는 운반대)을 갖고 테이블을 만들었다. 쓰레기를 재활용한다는 개념에서 한발 더 나아가, 기능을 갖춰 디자인한 하나의 가구로 재탄생시켰다. 헨리크 엔봄은 “물건을 계속 사고팔도록 부추기는 ‘마케팅’을 좇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쓰레기를 갖고 디자인을 하는 것은 ‘버리기주의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된 것으로, 친환경 디자인을 추구하는 핀란드 디자인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핀란드에서 건축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일라리 아이리칼라는 “일부러 비틀고, 장식적인 것을 우리는 추구하지 않는다. 재료의 성격과 특징을 이해하고 그것을 디자인에 반영하는 게 출발점이 된다”고 말했다. 전시회 기간에 토요일마다 진행되는 워크숍에서 ‘트래시 디자인’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도 마련했다.

핀란드 디자인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도 여전히 남는 의문. 결국 그곳에서 난 디자인 제품을 사는 것이 핀란드 디자인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아니겠냐는 거다.

“옛날 한국 사람들이 쓰던 서민 가구를 봤다. 오히려 이 한국 공예품들을 보면서 아주 단순하면서도 기능적인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헨리크 엔봄은 말했다. 안애경 큐레이터는 설명했다. “한국인들이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디자인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와 익숙한 것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북유럽 디자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크래프츠맨십은 우리말로 풀이하면 ‘장인 정신’과 일맥상통하거든요. 결국 잊었던 가치를 되찾고자 하는 욕망이 점차 커지기 때문에 북유럽 디자인 붐이 일고 있는 것 아닐까요?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백화점에서 비싼 북유럽산 디자인 제품을 사서 집에 놓고 부리는 것은 허세처럼 느껴져요.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난 자연 재료들로 아름답게 빚은 공예품에 담긴 정신이 핀란드 디자인의 정신과 더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핀란드 디자인 제품을 더욱 가까이 느껴보고 싶다고? 이탈라(Iittala), 아르테크(Artek), 아바르테(Avarte)의 제품들이 전시되고, 아트숍에서는 디자인 제품을 팔기도 한다.


style tip

노르딕데이도 열린다네

 ‘핀란드 디자인’전은 4월14일까지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 1~3전시실에서 열린다. 전시뿐만 아니라 핀란드 대표 디자이너, 미술학교 교육자들과 함께 진행하는 워크숍과 세미나는 핀란드 디자인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5월부터는 부산에서 두달 동안 전시회가 이어진다. 문의 (02)580-1300.

 ‘노르딕데이-일상 속의 북유럽 디자인’전도 열린다. 19일부터 5월5일까지 서울 중구 수하동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갤러리에서 열린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와 현대미술 작가, 공예가 10여명의 작품을 한데 모았다. 4월 중에는 2차례에 걸쳐 북유럽 디자인 아카데미를 일반인을 대상으로 연다는 계획이다. 문의 (02)2151-6514.



2012.03.1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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