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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4.09 | 조회수 : 1974

제목 : [Norway] 우리가 몰랐던 노르웨이의 진실 글쓴이 : 스칸디나비아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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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는 ‘북으로 가는 길’이란 뜻 

노르웨이(Norway) 출신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의 대표작 `절규`는 그 참극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지은 표정이었을까. 

평화로운 여름 오후의 캠프장. 한 과격주의자가 천진난만한 청소년들에게 정면으로 기관총을 난사한 전대미문의 학살극 무대로 어느 날 우리의 관심 한 복판에 선 나라 노르웨이. 범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빅은 한국을 순혈주의 모범국가로 지목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밝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기도 했다. 만약 브레이빅이 한국 언론과 사회단체의 열화 같은 다문화 가정 지원 캠페인을 봤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브레이빅 참극이 발생하기 꼭 일주일 전 필자는 취재차 노르웨이 오슬로(Oslo)를 방문했다. 나홀로 여행이어서 오슬로 중앙역에서 가장 가까운 로얄 크리스티아나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중앙역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호텔 7층 객실에서 새벽 3~4시까지도 떼 지어 배회하며 고성방가를 일삼는 야경꾼들로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고요했던 오슬로가 절도와 소매치기로 몸살을 앓게 된 것은 중동지역 난민출신 이주민들이 경찰력으로 통제하기 어려울 만큼 많아진 탓이라고 한다. 행복지수라고 불리는 인간개발지수(HDI; Human Development Index)가 10년째 세계1위인 노르웨이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전화(戰火)가 끊이지 않는 중동지역 난민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노르웨이 한인회 회장을 지낸 김상숙 사가투어 대표는 “얼마 전까지 담장도 없는 집을 자물쇠로 채우지 않고도 외출했었지만 최근에는 낮에 정원에서 선탠을 하는 사이에도 귀금속을 털어가는 절도사건이 빈발해 주민들이 몹시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새하얀 불면의 백야, 새벽녘까지 수도 오슬로의 중앙역 광장을 뒤흔들던 소음에서 비롯되는 불안감을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인 것은 이방인인 필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던 2011년 7월 오슬로에는 이러다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공기 속을 떠돌고 있었다. 

어지간해선 마음을 열지 않아 

인구 479만 명의 노르웨이는 59만 명이 거주하는 수도 오슬로와 노르웨이의 전통이 살아 있는 제2의 도시 트론하임(Trondheim), 피요르드의 장엄한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인구 25만의 베르겐(Bergen), 상업과 조선업의 중심지 스타방게르(Stavenger)등 4개 도시가 주요 인구밀집지역이다. 

오슬로 교외로만 나와도 울창한 삼림과 협곡에 묻혀 동화의 나라처럼 동떨어진 작은 촌락을 쉽게 볼 수 있다. 5월부터 7월 말까지 3개월간의 짧은 백야가 지나면 서서히 밤이 길어지기 시작해 10월부터 1월까지는 거의 햇살을 볼 수 없는 암흑천지다. 그래서 쓸쓸하고 황량한 자연환경에서 체온을 나누며 살아가는 지역민들 간의 유대는 상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깊고 애틋하다.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가 대체로 비슷한 자연조건이지만 1905년 스웨덴과의 국가연맹을 깨고 분리독립하면서 북쪽 해안선을 따라 길게 형성된 오지를 차지한 노르웨이의 자연환경은 이웃나라보다 한층 가혹하다. 2007년 삼성그룹의 지역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으로 노르웨이에 1년간 파견됐다가 최근 오슬로 지사로 발령받은 삼성중공업 류광현 과장은 “노르웨이 사람들의 지역적 유대감은 한국의 영호남 지역감정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노골적이면서 끈끈하다”고 전했다. 

거친 바이킹족의 후예인 노르웨이인들은 대체로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아 어지간해서는 무대에 나서지 않고 마음을 잘 열지 않는다. 아무리 친해져도 집으로 친구를 초대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이나 직장에서 같은 지역 출신을 만나면 그 즉시 호형호제하면서 단짝이 돼버릴 정도로 애향심과 지연에 대한 집착이 유달리 강하다는 것이 현지 한인들의 지적이다. 

노르웨이에서 애향심은 분파주의로 작용하기보다 민족애와 조국애의 시너지로 승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류 과장은 “세계 어느 나라를 가 봐도 노르웨이에서밖에 보지 못한 진풍경이 있다”며 “노르웨이 사람들은 자기 생일날 민속의상을 입고 집 밖에는 노르웨이 국기를 내거는데 생일이라고 해서 국기를 거는 심리를 도대체 이해하기 힘들어서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짙은 향토애가 확장된 민족 유대감의 연장선상에서 형성된 국가관은 종교적 일체감으로도 이어진다. 2010년을 기준으로 노르웨이의 종교 분포는 복음 루터교가 80%를 넘는다. 사실상 단일 종교 국가다. 

노르웨이가 비록 인도주의 차원에서 중동지역 난민을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그들의 민족적, 종교적 일체감이 유지해 오던 일상의 평온이 무너지면서 커다란 사회적 스트레스를 유발했으리라는 짐작은 가능하다. 미치광이에 불과한 브레이빅에게 환경적 개연성이란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는 아니다. 

행여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요인들이 또 다른 브레이빅, 또 하나의 악마를 잉태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는 없을까. 한국은 2002년 월드컵에서 보여준 대로 노르웨이에 못지않은 열정적인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다. 다른 집단, 다른 견해, 다른 문화에 대한 배타성도 강하다. 

전체적으로 다문화 현상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한 편이지만 베트남 아내 살해사건 등 개별적 현실은 다문화 사회의 각종 구호들을 배반하고 있다. 극단적인 편 가르기와 반대정파에 대해 한 치의 관용도 없는 경멸과 적의. 욕설과 인격모독의 홍수인 인터넷 댓글들. 

물론 브레이빅은 한낱 미치광이에 불과하지만 사건 직전 오슬로를 떠돌던 불안한 공기가 우리 주변에도 스멀스멀 맴돌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되는 것이 필자만의 기우이길 바란다. 

가까운 스웨덴, 한일 관계와 비슷 

피요르드 / 노르웨이의 호수

‘북쪽으로 가는 길’을 뜻하는 노르웨이 왕국은 한국이 일제 치하에 들어갈 무렵인 1905년 스웨덴 왕국에서 독립했다. 원래 스웨덴과 노르웨이, 덴마크는 중세시대 칼마르(Kalmar) 동맹을 맺어 형제국가처럼 지내왔다. 1300년대 중반 흑사병으로 인구의 60%를 잃은 노르웨이가 자력으로 일어서기 힘들었던 탓에 덴마크와 400여 년간 연맹을 맺어 국가 기능을 의지하다가 다시 파트너를 바꿔 스웨덴과 연맹을 맺었으나 입헌공화제 채택을 계기로 독립을 결정했다. 

지금도 노르웨이의 왕가는 덴마크 출신인 것이 칼마르 3국의 관계를 설명해준다. 그러나 아무래도 국력의 열세 탓에 사실상 지배와 예속관계였던 스웨덴에 대한 감정이 곱지만은 않다. 결정적으로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은 스웨덴이 중립을 명분으로 재빨리 독일군에게 길을 열어줘 직격탄을 맞은 것이 민족감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영국에 망명정부를 세워 나치와 싸웠던 노르웨이는 이후 중립국 스웨덴과는 달리 국제연합(UN)의 창립 멤버가 됐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면서 확실한 친서방 진영에 서게 된다. 

노르웨이를 이야기하면서 스웨덴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기는 힘들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연상케 하는 측면이 있다. 스웨덴은 일본과 같은 공업 강국이다. 

자동차와 중장비 회사 볼보(Volvo)와 사브(Saab)로 대표되는 스웨덴의 기계공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실제로 스웨덴과 일본은 국제 비즈니스 무대에서 남달리 돈독한 우의를 과시하는 우방이기도 하다. 스웨덴은 한때 80만 명의 국방군을 유지했으나 최근 경제적 어려움으로 병력을 대폭 줄인 대신 그동안 쌓아온 첨단 레이더 장비와 미사일 제조기술을 한국 정부에도 수출하고 있다. 한때 유럽을 호령했던 전통의 강호 스웨덴과 약소국 노르웨이의 경제적 우열은 최근 들어 상전벽해를 떠올릴 만큼 반전됐다. 노르웨이인들이 스웨덴에 대해 갖고 있던 민족감정도 그 덕에 많이 누그러졌다. 

북쪽 해변 오지를 차지하고 있던 노르웨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분리독립을 관대하게 허용했던 스웨덴은 1967년 노르웨이 대륙붕에서 북해유전이 개발되자 땅을 치고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웨덴으로서는 노벨상과 관련해서도 아쉬운 대목이 있다. 1901년부터 수여된 노벨상은 알프레드 노벨(Alfred Novel)의 유지에 따라 물리, 화학, 의학, 문학상(그리고 1960년대 들어 추가된 경제학상)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시상하도록 했으나 노벨상의 정신이자 백미인 평화상만은 무슨 이유에선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시상하도록 했다. 

본인의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진정한 이유는 알 길이 없지만, 연맹이라고는 해도 스웨덴으로부터 유무형의 수탈을 당하고 있던 노르웨이에 대한 배려이자 양국의 평화를 기원하는 뜻에서였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그러나 노르웨이가 결국 분리독립하게 될 줄 알았다면 노벨의 결정도 달랐을지 모르겠다. 

석유 판 돈 함부로 쓰지 않는 강소국 

오로라 (사진제공=노르웨이 대사관)

비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 중 가장 산유량이 많은 노르웨이 북해유전은 석유 저장량으로는 세계 5위, 천연가스 저장량은 세계 2위다. 현재 국가총생산량(GNP)의 22%를 차지하는 북해유전 수익으로 노르웨이 경제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80년대부터 스웨덴을 앞지르기 시작해 현재는 룩셈부르크에 이어 2번째인 8만4443달러에 달한다. 2009년에는 국내총생산량(GDP)에서도 인구가 두 배인 스웨덴을 앞질렀다. 

노르웨이는 EU에 가입하지 않은 덕분에 현재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재정위기를 강 건너 불처럼 바라볼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막강한 현금동원력을 바탕으로 세계유일의 순채권국으로 올라섰고 서방에서 유일하게 9%의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제3자가 보면 지리적 여건으로 ‘로또’를 맞은 덕에 돈방석에 앉게 된 노르웨이가 얄미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북해유전에서 번 돈을 존경스러울 만큼 현명하게 사용하고 있다. 노르웨이 정부는 1995년 북해유전 수익으로 글로벌연금펀드(Government Pension Fund-Global, 일명 국부펀드)를 만들었다. 

2006년 기준 2000억 달러였던 이 기금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헐값에 나온 자산들을 사들이면서 지난해 3월 기준으로는 5700억 달러로 커졌다. 미국이 항공우주산업에 투자한 예산의 약 3배 규모다. 

노르웨이 글로벌연금펀드가 주목받는 것은 천문학적 규모보다도 핵무기 개발에 관련된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 원칙에서도 나타나듯이 윤리성과 투명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막대한 부를 쌓아두고 있는 노르웨이가 최근 기초연금법을 개정해서 1963년 이후 출생자에게는 기초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아무리 넘쳐나는 곳간이라도 무차별 선심 앞에서는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여성인권지수 부동의 1위 국가 

5월 17일은 노르웨이 제헌절로 가장 큰 국경일이다. 이 날은 전 국민이 노르웨이 국기를 들고 거리 행진을 한다.

노르웨이 정부의 냉철한 판단과 얄미울 정도로 알뜰한 재정운용 능력은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현지 한인들은 “여성이 정치와 사회를 주도하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노르웨이의 여성인권지수는 부동의 세계1위다.(참고로 2009년 기준 일본 28위, 한국 61위) 장관 등 고위공직자의 절반 이상을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노르웨이가 배출한 문호 헨릭 입센(Henrik Ibsen)의 `인형의 집`에서부터 여성의 역할과 정체성에 눈을 뜬 것이 계기였다고 할까. 노르웨이 여성들의 사회 참여와 정치적 리더십은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러고 보면 노르웨이는 역사의 굴곡과 정서, 기질에 있어서 우리와 닮은꼴인 듯하면서 너무나 다른 나라이기도 하다. 다른 만큼 배워야 할 점이 많은 나라라는 뜻이기도 하다. 또 우리가 도약하기 위해 손을 꼭 붙들어야 할 나라, 반드시 동반자로 삼아야 할 나라이기도 하다. 

오슬로에서 만난 이병현 주노르웨이 대사는 “한국과 노르웨이의 교역량은 선박제조특허, 연어 등 수산물, 광물 임산자원을 합쳐 지난해 65억 달러로 스웨덴을 10억 달러 앞질렀고 프랑스에 육박하는 수준”이라며 “더욱이 국제기구에서 활발한 기부와 적극적인 참여로 북극자원 개발을 위한 5개 이사국 중 하나여서 우리의 자원외교에서 절대적인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외교상대 주요국가 순위에서 스웨덴에 한참 뒤쳐져 최하위에 근접한 대접을 받고 있다. 브레이빅 사건이라는 달갑지 않은 계기로 재조명 받게 된 노르웨이지만 한 꺼풀씩 벗겨 나갈 때마다 부럽고 매력적인 나라, 괄목상대해야 할 나라인 것만은 분명하다.

201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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