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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9.20 | 조회수 : 361

제목 : 《8.24》韓中수교 20년… 성장痛 극복이 과제─문화일보 기고 글쓴이 : paxsi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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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이 24일로 수교 2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한·중(韓中) 양국은 몰라보게 발전했다. 중국은 주요 2개국(G2)의 반열에 올랐으며,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인구 5000만 명, 개인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선 강국이 됐다. 이제 두 나라는 자부심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동아시아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갈 만큼 성숙했다. 연간 2200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은 한·중 무역이나 연인원 640만 명에 이르는 인적 왕래의 규모에 도취될 게 아니라, 양국 관계 확대에 따른 성장통(成長痛)을 극복하고 새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양국 관계의 성장통은 몇 가지 인식의 오류에서 출발했고, 이를 떨쳐버리지 못하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우선 지적할 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남북한 어느 편도 들지 않겠다’는 중국 지도부의 잘못된 인식이다. 3대 세습으로 불안정한 북한 정권의 핵(核) 보유와 선군(先軍)정치, 남북한 긴장관계를 이용한 체제 결속, 그리고 경제난과 인권의 부재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고통이야말로 동북아시아 평화와 번영의 최대 장애다. 중국이 이를 외면한 채, 단순히 남북한 간에 편들지 않겠다며 북한에 ‘전통적 우호’의 시그널만 전하는 것은 대국의 오만이거나 냉전적 사고의 연장일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힘을 견제하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변명할 수 있으나, 성숙한 한·중 관계에서 한반도는 중국과 미국의 영향력 각축장이 아니라, 미래 지향적 새 질서의 산실이 돼야 한다. 남북한과 중국이 다 같이 평화와 사회 발전, 인권의 신장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면, 남북한의 편가르기는 무의미하며 옳지도 않다.

양국 경제관계에 대한 오해 또한 걸림돌이다. 한국의 기술 수준을 바짝 따라온 중국에 위협받고, 중국의 방대한 시장 규모에 비해 한국 시장이 작다는 자조감 때문에 우리 기업이나 정부 대표는 협상에서 위축된다. 현실은 다르다. 현대화와 국제화를 갈망하는 중국 내륙의 수많은 기업과 잠재시장, 심지어 농업부문도 적절한 기술 수준을 갖춘 한국경제에는 기회 요인이다. 다국적 기업과 가공수출 중심으로 발전해 온 중국의 기술 취약성을 감안할 때 한국 기업의 활동 공간은 아직 충분하다. 한국은 중국의 적합한 협력 파트너다. 또 유럽연합(EU)·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시켰으며, 세계에서 가장 민감한 소비자를 갖춘 한국 시장은 중국 기업 선진화를 위한 시험 무대다.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은 중국 상품의 진정한 국제화 인증이다. 한국은 중국과의 수평적 경제 협력이 가능한 유일한 ‘강국’이다.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편견은 양국민 간에 인식의 갈등 구조를 형성한다. 중국은 유가(儒家)문화와 한자를 기반으로 한 동북아시아 문화의 종주국이라는 고루한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중국의 경제와 사회 및 정치 발전의 불균형에서 오는 과도기 현상을 ‘낙후성’으로 매도한다. 큰 오해다. 고대사를 살펴보면 한국 문명과 중국 문명은 뚜렷이 구분된다.

중국 문명의 일방적 흐름이 아니라, 문화의 교호작용에 의해 동북아시아 문명이 형성됐다. 중국의 과도기적 ‘낙후성’은 동아시아의 미래 지향적 발전 모델을 창출하기 위해 거쳐야 할 진통이며, 같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문화에 우열은 없다. 국가주의 또는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수시로 드러내는 적대감, 그리고 과거에 집착해 미래를 등한시하는 감정 낭비는 성숙한 한·중 관계에는 맞지 않는 치기에 불과하다.

한국과 중국이 지난 20년 동안 쌓아 왔던 양국 관계를 기반으로, 이제부터는 신뢰와 협력을 통해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오승렬/한국외국어대 중국학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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