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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10 | 조회수 : 161

제목 : 한·러 관계, 과연 전략적인가?(2013.11 중앙일보) 글쓴이 : 러시아C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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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러시아연구소장

지난 1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8년 만에 한국을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과 두 번째 한·러 정상회담을 했다. 지난 9월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요 20개국(G20) 회담에서 상견례를 해서인지 양국 정상의 만남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정치·외교안보·경제통상·과학기술·문화 등 주요 관심사에 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눴고 이를 세부적으로 반영한 전문 34개 항의 서울공동성명을 발표했다. 2건의 협정 서명과 15건의 양해각서 체결도 했다.

이 가운데 박근혜정부의 3대 대외정책 핵심 어젠다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대해 러시아 측의 이해와 지지를 확보한 게 최대 성과로 보인다. 이번 공동성명은 과거에 비해 합의 내용이 풍성하고 협력의 방향성이 좀 더 구체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뒤집어 해석하면 그동안 양국 간 제반 협력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라는 속담처럼 썩 원활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2008년 9월 이명박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을 계기로 양국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한·러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는 아직까지 외교적 수사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게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2012년 말 기준 한국의 대러 교역액이 225억 달러로 늘었지만 대중 무역액의 10분의 1 수준이다. 러시아가 국내총생산(GDP) 세계 9위 규모의 경제력을 가졌음을 감안하면 경협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인적 교류도 미·중·일에 견주면 미미한 수준이다. 2010년 5월 발생한 천안함 피격사건과 같은 해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해서도 ‘전략적’ 관계인 한·러 양국은 ‘전략적’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이처럼 이상적 목표와 현실적 불일치가 온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예로 양국 간 이익교환의 불균형에서 비롯한 상호불신의 축적, 한국은 대북 전략적 우위 확보에 비중을 뒀지만 러시아는 경제협력에 주안점을 두는 양국 간 정책목표 우선순위의 비대칭성이 꼽힌다. 경협에서 시장주의적 접근(한국)과 국가주의적 접근(러시아)의 충돌, 러시아에서 부패와 관료주의에 따른 외국인 투자 유치 제도의 미비, 한국 사회 일각에서 러시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냉전의 타성 등도 양국 관계의 발전적 도약을 방해했다.

한·러 전략적 관계의 내실화를 더욱 어렵게 하는 구조적 요인은 따로 있다. 남북 분단이라는 지정학적 현실과 한·미 동맹이다. 지리적으로 중간에 위치한 북한은 소위 ‘알박기’처럼 적절히 긴장을 조성해 한·러의 전략적 협력을 제한해왔다. 미국의 동맹적 위계질서 아래에 있는 한국도 대러 정책에서 외교적 운신의 폭을 제한받아 왔다.

한국과 러시아가 진정한 전략적 관계로 진입하려면 각기 북한과 미국 요인을 최소화하는 외교적 노력이 요구된다. 러시아는 남북분단에서 오는 기회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고 평양의 호전성을 순치시키는 가운데 북한이 시장개혁과 남·북·러 삼각 경협에 적극성을 띠는 데 유익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도 한·러 관계를 한·미 관계의 종속변수로 보는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한·미 동맹과 한·러의 전략적 관계를 조화롭게 발전시켜 나가는 창조적 실용외교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것은 러시아와 미국이라는 양자택일의 이분법적 도식을 넘어선 것으로 한국 외교의 새로운 혁신과 도전을 의미한다.

주변 4강 정상 중 푸틴이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방한한 첫 지도자이고 두 달 새 상호교차방문 정상회담을 한 유일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번 한·러 정상회담의 의미가 크다. 박근혜·푸틴 시대 한·러 관계가 전략적 관계에 걸맞은 전면적 협력관계로 진입하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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