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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5.04 | 조회수 : 436
제목 : 《5.1》[시론/오승렬]북한, 핵실험하면 지는 거다 ─ 동아일보 기고 | 글쓴이 : paxsinic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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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야를 포함한 지구 곳곳에서 북한의 3차 핵실험 임박설이 제기되고 있다. 이르면 일주일 내에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이러다가 북한이 ‘국제사회의 기대’에 밀려서 정말 핵실험까지 갈까 우려된다. 2월 29일 미국과 영양지원 및 핵개발, 미사일 발사 유보 합의까지 갔던 상황이 두 달 만에 어찌 이리 됐는지 딱하다.
사실 북한은 지난해 12월 17일 김정일 사망 바로 다음 날 북-미 간 뉴욕 채널을 통해 그동안 미국과 진행했던 협의가 유효함을 암시했고, 이 와중에도 올봄까지 14개 이상의 대외경제 관련 법령을 정비해 왔다. 발단은 4월 13일의 로켓 발사다. 국제사회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불가사의하게 북한은 성공 확률이 낮은 줄 알면서도 발사를 감행했고 ‘역시나’ 실패했다. 4시간 만에 북한 스스로 기다렸다는 듯이 공표한 참담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4월 15일 김일성 100회 생일에는 진위가 의심스러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과시했다. 열병식 단상에 선 김정은은 20분 연설에 웃음까지 날렸다. 그날 저녁 폭죽과 춤이 평양을 덮었다. 김정일이 사망한 지 4개월도 안 돼서다. 북한으로 하여금 도대체 무엇이 앞뒤가 맞지 않는 일련의 행동에 나서게 했을까. 북한 입장에 대한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3대 세습 권력의 취약성으로 인해 북한은 이미 집단지도체제로 들어섰다. 무엇보다 영원한 당 총비서와 국방위원장 직을 김정일에게 넘겨주고 김정은이 취한 노동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직함이 지닌 함의가 무엇인지 새겨볼 필요가 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주체’의 가계(家系)가 주는 군주적 카리스마로 인해 김정은의 상징적 역할은 존중될 수 있다. 물론 김일성 생전부터 이미 북한을 관리해 왔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 혼자 ‘3년상’과 유훈통치로 북한을 밀고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북한의 신지도부 집단은 김정일 노선의 지속성을 강조하면서도 새로운 시작이 필요한 정책 딜레마에 빠졌다. 김정일의 핵개발 유훈 및 선군정치 노선에 대한 충성은 로켓 발사 정도로 대체하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일련의 행사를 서둘렀다. 중국 국경에서 50km 지근거리인 동창리 발사대를 사용하고 남중국해 쪽으로 탄도를 잡은 것 역시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경계한 김정일 유훈을 의식해서다. 중국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 참여는 그 결과다. 북한 신지도부는 이제 ‘정상적 환경에서 새 출발’을 하고 싶은 것이다. 로켓 발사는 대내외적으로 김정일 시대의 지속성을 보여주기 위한 최소한의 상징이었다. 이 같은 사정을 외부 세계가 좀 알아주기를 바란 것 아닐까.
이제 과제는 새 출발이다. 더 머뭇거리다간 기회를 놓친다. 부지런히 새로운 경제정책을 내놓고, 6자회담 틀 안에서 핵 문제와 평화 문제를 진솔하게 논의하면 된다. 개혁개방이라고 부르지 않고 김정일의 유훈이라고 해도 좋다. 그동안 개성공단에서 육성된 숙련 노동력과 축적된 경험은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북한이 고대하는 북-미 정상화도 열쇠는 북한이 쥐고 있다. 베트남의 도이모이(개방·개혁정책)가 1995년 미국과의 수교를 끌어냈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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