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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9.26 | 조회수 : 220

제목 : <사설> 난민들은 위협 요소인가? (2023.09.26) 글쓴이 : 중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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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래에 깊게 영향을 미칠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바로 국가 부채, 난민 그리고 외국인의 토지 구입 문제이다. 오늘날 각 국가는 시대적 문제인 국제이주 문제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1985년 튀르키예 헌법재판소는 “외국인의 토지와 부동산을 소유권 문제로 간주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명시하면서 “영토는 국가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기본 요소이자 주권과 독립의 상징이다”라고 판결했다.

현재 튀르키예 내부에서는 자국 내 난민 문제와 난민의 수가 문화적·사회적인 측면에서 튀르키예를 위협할 수준이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인종구성, 종교 사회 그리고 다른 사회적 요소들을 이유로 단일된 튀르키예가 망가지게 되는 것은 터키인들에겐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부분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튀트키예에 들어온 사람들을 보면 그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일어나는 현상을 더욱 철저히 조사해야 함은 명백하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튀르키예는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하고 있다. 등록된 49만 9천 명 외에도 30만 ~ 200만 명으로 예상되는 불법이주민들도 존재한다.

현재 시리아인들은 ‘예외 시민권(İstisani Vatandaşlık)’을 통해서도 튀르키예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다. 이주민 연구소(Göç Araştırmaları Derneği)의 소장 디뎀 다느쉬(Didem Danış)는 최근 몇 년 동안 ‘예외 시민권’ 기준을 아무도 모른다는 점, 시민권을 획득한 자들의 정보가 관보에 기재되지 않는 점, 23 만 명의 시리아인에게 ‘예외 시민권’이 부여되었고 6만 개의 취업비자가 발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백만 명의 시리아인이 일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재 튀르키예의 주와 구 단위에서도 난민 마을이 다수 형성되었다. 값싼 노동력으로 인해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이주민들은 보건과 심리 지원, 거주와 교육 지원에 대한 접근성 문제, 영양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또한 인종차별도 일어나고 있어 사회적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는 추세이다.

튀르키예의 동남부와 동부 국경의 통제되지 않는 환경에서 유입되는 외국인 중 누가 테러리스트이고 누가 일반 이주민인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먼저는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그다음으로 아프간에서 사람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인구 분포의 맥락에서 중요한 시사점들이 발견되었는데, 바로 인구수 측면에서 가시적인 변화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 조사에서 튀르키예 동부 킬리스(Kilis)지역의 인구 중 43.43%가 임시 거주하고 있는 이주민인 것이 밝혀졌으며,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Hatay) 주 시장은 레이한르(Reyhanlı) 구의 인구 57%가 시리아인인 것으로 발표했다.

하제테페 인구조사연구소(Hacettepe Nüfus Etüdleri Enstitüsü)의 교크한 으드름카야(Gökhan Yıldırmkaya)는 시리아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아동 21%가 미등록 아동이고, 6세 이상의 여성 50%가 문맹이며 남성들의 교육 기간도 5.1년에 그친다고 밝혔다.

또한 연구에 따르면 시리아 이주민 출산율은 5.1명이며 15~19세 여성의 50%는 18개월에 한 번 출산하고, 20~29세 여성의 46%는 24개월 미만에 한 번 출산하며 30~39세 여성의 24%는 2년에 한 번 출산하는것으로 집계되었다.

오늘 발표된 공식 보고에 의하면 튀르키예 인구 중 6%가 교육을 받지 못한 난민이다. 현재도 난민의 숫자는 증가하고 있으며, 이 증가세는 머지않아 배로 늘어날 것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튀르키예의 사회, 문화 그리고 인구학적 구조가 영향받는 것은 명백하다. 튀르키예는 유럽연합(EU)의 국경 경비대 역할에서 벗어나고 국가 주도의 정책으로 조속히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설 속 튀르키예 현지인들이 느끼는 난민 문제가 민족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튀르키예가 가진 역사적인 이유와도 깊게 연관이 있다.

튀르키예의 전신 오스만 제국은 1차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이후 연합국과 체결한 세브르 조약에서 영토가 연합국에 분할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이후 연합국에 할당된 영토에 연합국의 군대가 주둔하고 오랫동안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중동 영토도 독립되면서 튀르크인들은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특별히 1919년 그리스가 민족주의적 팽창주의인 ‘메갈리 이데아’에 기반해 이전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 회복을 목표로 오스만 제국의 이즈미르(İzmir)를 침공한 행위는 튀르크인들에게 큰 저항 의식을 일으켰다. 튀르크인들은 오늘날도 튀르키예의 국부로 존경받는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을 중심으로 뭉쳐 영국의 지원을 받은 그리스군을 격퇴한 이후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으로 새로운 시작을 이어 나가게 되었다.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 건국 이후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은 신생 국가의 강한 성장을 위해 강력하고 신속한 현대화 작업을 진행했다. 케말 통치 시기 튀르키예에선 서구식 복장 장려 정책, 아랍 문자에서 라틴 문자로의 문자 개혁, 종교 교육을 대신한 현대식 교육 시스템 도입 그리고 무슬림들의 지도자인 칼리프제의 폐지와 같은 현대화 정책이 이행되었다.

이와 같은 무스타파 케말의 정책은 튀르키예의 현대화에 중대한 기여를 했으며 튀르키예 의회인 대국민의회에서무스타파 케말의 사망 이후 그를 ‘튀르크인들의 아버지’라는 의미의 ‘아타튀르크(Atatürk)’ 호를 부여했다.

튀르키예 현지인들이 지난 세월 자연스럽게 전쟁을 통해 지켜낸 자국에 대한 애국심과 주권에 대한 강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또한 무스타파 케말 시기의 현대 교육 정책으로 교육을 받은 세대가 세속적인 삶과 현대적인 삶을 지향할 때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카플란(Robert D. Kaplan)이 저서 ‘타타르로 가는 길’에서 묘사한 것처럼 이슬람 전통이 지배하고 있는 시리아인들의 대거 유입은 튀르키예 현지인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난민이 대거 유입된 이후 근래 발생한 시리아 난민들에 관한 범죄 소식 특별히 2021년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시리아인이 튀르키예 청년 에미르한 얄츤(Emirhan Yalçın)을 살해한 사건 그리고 아랍인들과 아프간인들의 튀르키예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사건들도 튀르키예 현지인들이 난민에 대해 긍정적 여론을 가지지 않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난민에 대한 부정적 분위기 속에서 높은 출산율과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 내는 난민들이 튀르키예의 사회적인 모습이 바뀌는 데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튀르키예 현지인들의 염려는 어찌 보면 필연적인 반응일 것이다.

 

출처: "Sığınmacı ve mülteciler tehdit unsuru mu? - Prof. Dr. Osman İNCİ", Cumhuriyet, Sep 04, 2023 (제목을 클릭하면 원문으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기사날짜: 2023.09.04 (검색일: 2023.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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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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