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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말
21세기 문명 전화의 플랫폼 라틴아메리카!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남미연구소는 1974년에 설립된 국내 최초의 중남미지역 전문연구기관입니다. 그동안 해당 지역연구의 학문적 발전과 전문가 양성, 정부와 민간기관에 대한 지역정보 제공 등 연구소 본연의 활동에 묵묵히 매진해 왔는데, 연구소 설립 이후 반세기 동안 세상이 크게 변했습니다. 냉전에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포스트 신자유주의로 이어지는 사상적 패러다임의 변화뿐만 아니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이어지는 물리적 패러다임 또한 빠르게 전환되었습니다. 2020년 지구촌에 예기치 않은 자연재해처럼 들이닥친 코로나19 이후 세상은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중남미연구소는 급변하는 세계사적 조류에 조응하는 지역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1980년대의 인문과학, 1990년대의 사회과학 중심 지역연구에 이어 2000년대부터는 자연과학, 특히 환경학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개발하고자 시도했습니다. 본 연구소가 2009-2017년에 한국연구재단의 ‘대학중점연구소지원사업’으로 수행한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한 중남미 환경정보 인프라 및 네트워크 구축’은 그 산물입니다. 그간의 노력과 성과를 인정받아 2019년에는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플러스(HK+)’ 지원사업에 선정되었습니다. HK+ 사업은 지난 2007년 세계적 수준의 대학연구소 육성과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시작된 인문한국(HK) 지원사업의 후속 절차입니다. 중남미연구소는 대학중점지원연구소 시기에 구축한 연구역량을 바탕으로 HK+ 사업 본연의 취지에 적극 부응할 것입니다. 축적된 HK 사업의 성과를 심화·발전시키고 이를 사회적·국제적으로 확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본 연구소의 HK+ 사업 어젠다는 ‘21세기 문명전환의 플랫폼, 라틴아메리카: 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입니다. 이 주제는 현재 지구촌이 당면한 생태와 환경문제에 대한 대안적 패러다임을 중남미 지역연구를 통해 모색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중남미’와 ‘문명전환’의 두 키워드는 서로 무관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16세기 이후 인류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주로 중남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근대’는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함께 개막되었으며,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역시 중남미에서 유입된 은이 그 원동력을 이루었습니다. 근대가 중남미에서 추동되었듯, 탈근대 사상의 자양분 역시 중남미 지식인들에 의해 뿌려졌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아르헨티나), 서구 중심의 근대성을 비판한 옥따비오 빠스(멕시코), 해방신학의 아버지인 구스따보 구띠에레스(페루), 해방철학을 주창한 엔리께 두셀(아르헨티나), ‘바로크적 에토스’를 통해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한 볼리바르 에체베리아(에콰도르-멕시코) 등이 대표적입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창조론적 사고를 획기적으로 뒤집은 진화론의 ‘예루살렘’이 다름 아닌 갈라파고스 제도였다는 점은 ‘문명전환의 플랫폼’으로서 중남미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최근의 생태와 환경위기에 직면해 우리는 또 한 번 이 대륙을 주목하고자 합니다. ‘지속가능한 발전’과 같은 서구식 방편이 아니라 생태계와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보다 근원적인 패러다임의 변화 가능성을 제시하기 시작한 곳이 이 지역 국가들이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2008년에 제정된 에콰도르의 신헌법은 자연을 ‘빠차마마’라 부르며 인간에게 ‘인권’이 있듯 자연에는 ‘자연권’이 있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볼리비아 역시 2011년에 세계 최초로 ‘어머니 지구’의 생존권리를 보장하자는 일명 ‘어머니 지구 권리법(Ley de Derechos de la Madre Tierra)’을 명문화했습니다. 중남미 18개국에서 자연권 및 생태사상을 반영한 헌법 및 관련 법률이 제정되었음을 감안하면 생태주의적 패러다임의 제도화 측면에서 중남미는 가장 앞서나가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중남미는 자연을 수동적인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공생해야 할 ‘권리의 주체’로 가장 먼저 인식하기 시작한 지역입니다.

중남미의 실험은 성패 여부와 상관없이 대단히 중요하고 시의적절합니다. 자연권에 근거해 새로운 인간과 공동체적 대안을 모색하려는 인식의 변화와 노력 자체가 인류문명의 새로운 전환을 위한 시도로서 중대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본 사업단은 그들의 시도를 다양하고 총체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중남미의 역사와 사상, 문화 등 인식론적 계보를 추적할 것입니다.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중남미의 정치와 경제, 사회, 법률 등 구조적 요인들을 고찰할 것입니다. 환경학적 관점에서 이 대륙의 생태와 환경문제 등 자연적 요인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것입니다.  
우리의 기획은 국내외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참신하고 창의적인 것입니다. 중남미의 과거와 현재, 정신과 물질, 인간과 자연을 아우르며 인류가 지향해야 할 미래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이 대륙에 대한 ‘재발견’의 시도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발견’은 물질적 탐욕에 의해 추동되었던 1492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중남미에서 황금 대신 인류 모두를 위한 공존과 상생의 지혜를 찾고자 합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남미연구소 인문한국플러스(HK+) 사업단장
신정환